본문 바로가기

리뷰

넷플릭스 신작 <이제 그만 끝낼까 해> 해석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만의 넷플릭스 신작, '이제 그만 끝낼까 해'가 9월 4일 공개됐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기억의 조각을 여행하는 장면들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도 재미있게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이 영화는 장르를 따지자면 공포물에 가깝다. 놀라는 장면은 없는데 분위기가 침울하고 으스스하다. 영화 유전의 주연을 맡았던 토니 콜랫 때문에 더 무서움... 사실 겟아웃이랑 비슷한 느낌의 영화가 아닐까 했는데 전혀 다르다.

 

이 영화의 재밌는 점은 상징이 많고 서사가 단순하지 않아 이런저런 해석과 끼어 맞추기를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럽게 봤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보면서 놓쳤던 부분을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여하튼 개인적 해석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부터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다.

 

1. 루시는 제이크의 또 다른 자아

영화의 주인공은 제이크다. 학교 관리인이 학교를 청소하는 장면과 루시와 제이크가 제이크의 어린 시절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병치되어 등장하는데, 학교 관리인=제이크=루시. 제이크와 학교 관리인이 동일인이라는 건 처음부터 나온다. 처음에 창 밖을 바라보는 사람이 학교 관리인에서 제이크로 바뀐다.

 

학교 장면이 현실에 가깝고 부모님 집에 방문한 건 제이크의 상상 혹은 기억, 무의식인 듯하다. 루시와 제이크가 동일인물이라는 건 제이크 집에 걸려있던 어린 시절 사진이 루시였다가 제이크로 변한 장면에서 알 수 있다. 또 제이크의 어린 시절 방에 있던 시집의 시를 루시가 자기가 지은 시라며 읊기도 한다.

 

2. 루시는 제이크가 못 이룬 꿈, 희망

루시의 이름과 루시의 직업, 루시와 제이크가 어떻게 만났는지가 계속 바뀐다. 루시는 그동안 용기가 없어서 말을 걸지 못했던 여자들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러니까 이뤄질뻔한 사랑인데 용기가 없어서, 혹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실패한 사랑들. 루시가 관리인에게 제이크가 술집에서 자기를 징그럽게 쳐다봤다며 화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제대로 말도 붙여보지 못한 자기에게 자기가 화를 내는 장면인 것 같다. 루시가 제이크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장면(차 안에서 baby it's cold outside 노래를 가지고 논쟁했을 때), 루시가 관리인을 안아주는 장면 모두 서툴고 불안했던 자신을 용서해주는 듯 보였다.

 

또 제이크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결국 화가가 되지 못했고,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지만(제이크의 어린시절 방에서 시집이 발견) 시인이 되지 못했고, 물리학에도 관심이 있었던 듯하다. 루시가 화가이자 시인이자 물리학자인 건 제이크가 못 이룬 꿈들을 루시가 대변하고 있기 때문.

 

3. 제이크 부모님의 모습은 모두 제이크의 기억 속 모습들

기억은 완전하기보다 단편적이고 편향되어 있다. 엄마가 반복적으로 손을 흔들어주는 장면이라든지, 부모님이 다투는 모습, 엄마 아빠의 과장된 성격 같은 것들은 제이크가 부모님을 기억하는 방식들. 그래서 다소 괴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갑자기 나이 들고, 젊어지고 이런 것도 다 제이크의 기억 속이어서 그런 듯.

 

4. 농장집=제이크의 의식, 지하실=제이크의 의식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것

제이크는 지하실을 보여주기 싫어하는데 숨기고 싶어서 의식 속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놨던 것들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하실에는 제이크가 열심히 그리려다가 실패한듯한(?) 그림이 있다.

 

5. 제이크는 농장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첫 장면에 노인이 된 제이크가 여전히 농장집에서 살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아마도 제이크의 기억들을 조합해 볼 때 부모님이 늙어서 아프게 되자 부모님을 돌보면서 살았고(엄마에게 밥을 먹여주고, 아빠가 기억할 수 있게 라벨을 붙여주면서 돌봤던 듯하다) 돌아가시고 난 후 계속 고향 집에 남아 평생을 살았던 것 같다.

 

6. 제이크는 농장집을 떠나고 싶었다.

루시는 제이크에게 농장집을 떠나자고 계속해서 말한다. 이곳을 떠나야 할 이유를 40가지 정도 설명했다면서. 삶에서 제이크가 못 이룬 것들을 루시가 대변하는 것으로 미루어봤을 때 제이크는 너무나도 농장집을 떠나고 싶어 했다.

 

7. 이제 그만 (삶을) 끝낼까 해

결국 이 영화는 하고 싶었던 것도 많고 희망도 많았지만 결국 평생 한 곳에 머물면서 반복적인 일상을 이어와 노년에 도착한 사람이 "이제 꿈을, 희망을, 삶을 모두 끝"내려고 하는, 죽음의 바로 직전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영화처럼 느껴졌다.

 

 

+ 루시의 옷이 계속 바뀐다. 처음에는 색깔만 침침해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옷 자체가 계속 바뀐다. 루시의 대사 중에 "색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머릿속에서 다 같은 걸 다르게 인식할 뿐"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 거 같은데.... 이건 잘 모르겠다.

 

+ 나이 든 제이크는 루시에게 계속 전화를 한다. "답해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 질문이 뭘까?? 끝낼까 말까 하는 것? 이 부분도 놓쳤는지 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