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는 올여름 즈음에 출판된 백수린의 단편 소설집이다!
처음 실린 단편인 "시간의 궤적"을 읽은 지는 꽤 오래전인데 전 작품을 읽기까지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백수린 작가의 작품은 항상 쉽게 쓰인 것 같으면서도 다 읽고 나면 단정하고 신경을 엄청 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온전한 느낌...?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때문인지 신중함 때문인지 읽고서 괜히 눈물 난 적이 많았음...
오랜만에 해설까지 다 읽었고 황예인 평론가가 쓴 해설도 흥미롭게 읽었다!
해설을 읽을지 말지 매번 고민하는데(안 읽자니 책에 있는 모든 활자를 읽지 않으면 책을 끝까지 안 읽은 듯한 느낌이 들고, 읽자니 어렵고 재미없지 않을까 싶고)
확실히 해설을 읽고 나면 소설이 더 좋게 느껴지고, 더 잘 이해한 듯한 착각도 생기니 뿌듯하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모순을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쁘지만 좋은 것, 편하지만 불편하기도 한 것, 설레지만 무서운 것, 이런 식으로 세상 거의 모든 일에는 여러 면이 있기 마련인데 그걸 받아들이는 일이 어렵다고 느꼈다. 어느 한쪽으로 명확히 정해지지 않고 다양한 면이 있다는 것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황예인 평론가의 해석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읽는 데 도움이 됐다.
책에 실린 여덟편의 단편 중 개인적으로는 "시간의 궤적", "여름의 빌라", "고요한 사건", "아주 잠깐 동안에"가 좋았다.
특히 "여름의 빌라"가 가장 좋았고, 덮고도 한참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이야기였다.
서간체 형식으로 된(?), 상대한테 말하는 어투로 이뤄진 소설은 잘 읽히지 않아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감안하고도 이 단편은 무척! 좋았다.
아래는 좋았던 부분 중 일부를 정리한 것.
"남편이 유학 가면 아내가 학업이나 일을 포기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평범한 일이에요." 당신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응접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내가 말했을 때 당신은 나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습니다. "주아, 너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 자유가 있단다." 당신의 말이 내게 던졌던 파문. 고백하자면 나는 그후로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주문처럼 당신의 말을 떠올리곤 했어요.
- 여름의 빌라
#2.
긴 세월의 폭력 탓에 무너져 내린 사원의 잔해 위로 거대한 뿌리를 내린 채 수백 년 동안 자라고 있다는 나무. 그 나무를 보면서 나는 결국 세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 여름의 빌라
#3.
그녀가 갈망하던 것은 무엇이었나. 뭔가 특별한 것, 고양시켜주는 것, 그녀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그 무언가. 음악 교사와 교환하던 편지들. 악보 사이에 끼워 몰래 주고받던. 밤마다 그녀를 불면으로 이끌었던 것은 윤심덕과 김우진, 슈만과 클라라 같은 연인들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놀라운 사건들이 가득할 거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고, 자신에겐 인생을 하나의 특별한 서사로 만들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 흑설탕 캔디
#4.
그는 그녀를 꽤 좋아했지만,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롭던 첫번째 여자친구의 철없는 해맑음이라든지 격의 없음, 불행에 대해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유효해지는 낙관적인 모습이 떠오르면, 하루하루 전력을 다해 살면서도 쫓기는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마음을 털어놓는 것 같지만 최후의 최후에 이르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 두 번째 여자친구와 함께 있는 것이 쓸쓸해졌고, 자기 자신은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가 궁금해졌다.
- 아주 잠깐 동안에
#5.
국적, 민족, 인종, 언어, 나이, 계급, 성별 그리고 각자의 사적인 체험들로 뒤엉킨 존재가 바로 나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층위를 거쳐 생각이 발생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 대화를 나눈다.
- 해설 l 나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서
#6.
주아는 자신이 휴양지에 한시적으로 머무는 관광객임을 알기에 풍경 앞에서 느끼는 감정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그는 폭력으로 얼룩진 그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가난도 함께 응시한다. 하지만 이것이 감정의 억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과 불편한 감정을 어느 한쪽으로 해소하려 하는 대신 공존하도록 내버려두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바라본다.
- 해설 l 나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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