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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바다출판사)

 

3주 정도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이제야 읽었다!

기대만큼 너무 좋았다.

그러다 보니 좋은 부분에 붙이는 포스트잇을 징그러울 만큼 붙여버림...

 

작가 캐럴라인 냅이 30대에 쓴 짧은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캐럴라인 냅은 쌍둥이 언니에게 큰 애착이 있었고,

거식증과 알콜 중독을 앓았던 경험과, 극복한 경험이 있으며

다소 강박적인 성격에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마흔둘에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혼자 살다가 사망 한 달 전 결혼을 했다고 한다.

 

캐럴라인 냅의 글은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자기감정과 상황에 대해 놀랄 만큼 솔직하게 쓰고 있어 그게 또 왜인지 위로가 되었다.

감상적인 톤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냉소적인 톤도 아니어서 좋았다.

읽다가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우정이나 연애, 수줍음에 관한 부분이 그랬고, 자기 통제로부터 안전한 느낌을 얻는다는 부분도 공감이 갔다.

아마 대부분이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어느 정도는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쌍둥이 언니의 자식, 그러니까 조카에게 전하는 말은 눈물 날 정도로 따뜻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후에 쓰인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젊은 시절 정신적 질병과 충격을 지나온 후에 다소 가라앉고 편안한 중년, 노년을 즐겼으면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았던 부분을 모두 옮기자니, 거의 책 한권을 타이핑해야 하는 수준이라 그렇게는 안 될 것 같고

몇몇 부분만 옮겨둔다.

 

 

#1.

너를 가만히 볼 때면 가끔 불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네 작은 존재에, 완벽한 아기 피부에, 두 살짜리의 걸음마에 홀려서 넋이 나가는 것 같단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애정이란 내가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 사랑받으려면 시험을 통과하고, 지적 후프를 뛰어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여겼어. 그러니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깊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내게는 놀라운 일이야. 이것이 네가 내게 준 선물이란다. 네 존재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란다.

- "조이에게 보내는 편지"

 

#2.

이것이 삶임을 깨닫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그리고 이것은 진짜 신화일 뿐이다), 나이 드는 부모의 모습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실제로는 우리가 나이 들수록 잃은 것이 많아진다. 점점 더 크고 버거운 과제가 나타난다. 실수를 되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해 본다는 것"

 

#3.

언젠가 이게 필요할 수도 있어. 언젠가 이게 그리울 수도 있어. 언젠가 유행이 돌아와서 이걸 다시 입고 싶어질 수도 있어. 물건을 버리기가 어려운 것은 그것이 꼭 선택지를 도려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이라는 사람의 어떤 측면을. 혹은 자신의 역사 중 한 조각을.

-"사람들이 무엇을 못 버리는지 살펴볼 것"

 

#4.

나는 감정적 과부하가 우리를 마비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적 과부하는 일종의 무력한 좌절감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재난에 의한 감정적 과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