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으로 사서 읽었다.
좋은 단편 소설을 읽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 충동적으로 구매했지만
결과적으로 사길 잘했다고 생각! 기대한 만큼 좋았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전에 <여름의 빌라>를 읽어서 그런지 그런 느낌이 정말 있었다.
주인공 화자가 굉장히 조심스런 시선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비슷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실린 소설들의 화자는 과거를 돌아보고, 주변을 가만히 지켜보고,
사람의 슬픔과 기쁨을 파악하고, 때로 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봤다는 그 사실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의 행복한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아 그땐 그럴 줄 몰랐지, 하는 이야기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차분하고 처연한 느낌이 든다.
아래는 좋았던 부분 정리.
p.22
아버지에게 분명히 있기는 했던 조금의 재능은 단지 좌절의 원천으로만 작용하며, 실현되지 않은 막연한 잠재력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p.58
내 거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영화의 프리미어 시사회 날 밤에 찍은 사진이 있다. 그들은 뉴욕의 어느 소극장 밖에 서 있고, 아버지는 위쪽으로 보이는 마르키의 불빛을 가리키고 있다. 아버지는 슈트 차림으로, 어머니는 긴 이브닝드레스 차림으로, 둘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본 내 기억 속 유일한 때다. 그들은, 그 둘은,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몸을 살짝 숙이고, 자신들이 아직 보지 못하는 무언가에 맞서, 서로를 감싸 안은 모습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다.
p.163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이 두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나의 중요한 또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p.313
삶은 계속되지만 달라졌다. 더 물러졌고, 더 지루해졌다. 즐거움은 덜해졌고 고통은 그 구렁텅이의 깊이가 한없어진 듯하다. 그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을까 늘 경계를 해야 한다. 그날 오후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나는 누나가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그 구렁텅이의 가장자리에서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 빠질 마음을 먹지는 않으나, 그것의 존재로 인해 늘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구렁.
p.324
창문 밖 종려나무들을 흔들고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잔인한 짓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안개 속의 꿈을 믿으면서